임신

임신 초기 중기 가장 민감해졌던 가벼운 말과 무거운 감정

luckby25 2025. 7. 8. 03:00

임신을 하고 나서 몸도 달라졌지만, 사실 저는 감정이 먼저 달라졌다고 느꼈습니다.
아직 배도 나오지 않은 임신 초기였지만, 작은 말 한마디에도 마음이 요동쳤고, 누군가의 반응이나 눈빛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더라고요. 특히 임신 사실을 알리고 나서 들은 여러 말들 중, 저는 성별에 관한 말들이 가장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사람들은 궁금해서 묻는다고 했지만, 그 말들 뒤에는 종종 무의식적인 기대나 편견이 숨어 있었어요.
그게 꼭 악의 있는 말이 아니더라도, 임신이라는 민감한 시기를 지나고 있던 제게는 작은 말 한마디조차 쉽게 상처로 다가왔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특히 마음에 오래 남았던 말들과, 그때 제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기록해보고 싶습니다.

 

임신 초기 민감했던 말

 

“엄마는 딸이 있어야지”라는 말에 당황했던 순간

아기의 성별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던 시기였어요. 누가 특별히 묻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아들일까? 딸일까? 혼자 상상하곤 했죠.
그러다 주변 지인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게 됐고, 대화 도중 제가 “왠지 아들일 것 같기도 해요”라고 말했더니 돌아온 말이 “엄마는 딸이 있어야지. 딸 하나쯤은 있어야지~”, "넌 아들일거같아, 근데 딸이 좋아!" 무슨 의미일까 의아한 말도 있었어요.

엄마 얼굴이 아들 관상 같아요. 이런 말도 들어봤어요.

아들 엄마 관상은 도대체 어떤 얼굴이죠?

처음엔 별 뜻 없이 하는 말일 거라고 넘기려 했지만, 그 말이 계속 마음에 남더라고요.

마치 아들이면 부족하다는 말처럼 느껴졌고, ‘내가 낳을 아이의 존재를 누군가 평가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사람은 그저 가볍게 웃으며 한 말이었지만, 저는 괜히 아기에게 미안해졌고, 아직 확인도 되지 않은 성별을 두고 벌써부터 어떤 기대를 갖는 게 부담스러웠어요.

임신 초기는 단순히 아이를 품는 시기가 아니라, 그 아이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그 자연스러운 수용 과정을 방해한다는 느낌이라 그때 처음 알았어요.

 

“아들은 다 크면 남이야”라는 말이 주는 상처

성별에 대해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바로 “아들은 다 크면 남이야”라는 말이었어요.
“아들 같으면 어릴 땐 귀엽지~ 근데 크면 나 몰라라 한다니까?”
“딸이 있어야 노후에 기대지~”
이런 말들은 정말 예상치 못한 순간에 툭툭 튀어나왔습니다.

사람들은 그걸 그냥 농담처럼,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저는 그 말이 들릴 때마다 마음이 철렁했어요.


정말 아들을 낳으면 나중에 그렇게 되는 걸까?
아이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나와의 관계가 달라질 거라는 편견이 너무 깊게 박혀 있다는 사실이 서글펐습니다.

가장 속상했던 건, 아기의 성별이 ‘좋고 나쁨’의 기준처럼 이야기된다는 점이었어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두고 “어떻게 생겼을지”, “누굴 닮았을지”보다 먼저 “성별로 평가되는 현실”이 조금은 씁쓸했습니다.

 

“그래도 아들은 하나 있어야 든든하지”라는 기대의 무게

반대로 아기가 딸일 것 같다고 말하면 들리는 말도 있었습니다.
“딸도 좋지만, 그래도 아들은 하나 있어야 든든하지 않겠어?”
“딸은 귀여운데, 결국엔 아들 있어야지 집안이 든든해.”
이 말도 자주 들었던 말 중 하나입니다. 사실 저나 남편이나 아들이든 딸이든, 건강하게만 자라줬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어요.

그런데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딸을 낳게 되면 누군가에겐 부족한 엄마처럼 보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지어 “둘째는 아들로 낳아야겠다”는 말까지 자연스럽게 따라붙을 때는 제가 낳고 싶은 아이가 아니라, 누군가가 ‘원하는 아이’를 낳아야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성별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이런 말들은 말하는 사람 입장에선 무의식적으로 나올 수 있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임신이라는 민감한 시기와 맞물려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 말들 속에는, 임신한 사람에 대한 배려보다는, 말하는 사람의 기대가 더 앞선다는 느낌이 자주 들곤 했습니다.

 

하나는 외로워, 둘째도 생각해야지!

가장 힘들었던 건, 입덧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중인데도 “하나는 외로워. 둘째도 생각해야지~”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들었을 때였습니다. 그 말이 꼭 “넌 아직 부족하니까 더 해야 해”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지금 제 안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 하나만으로도 저는 이미 충분히 벅차고, 또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버티고 있는데, 더 나아가야 할 것처럼, 뭔가 계획해야만 하는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물론 둘째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도, 체력도, 감정도 없습니다.

저는 지금 이 순간 제 몸 하나 가누기도 어려운 임신 초기를 지나고 있는 중이고, 제 아기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그저 있는 그대로를 인정받고 싶고, 지금의 이 아이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축하받고 싶었습니다.

아이가 하나면 외로울 수도 있다는 건 이해하지만, 그건 부모가 결정할 일이고, 지금 이 시기를 버티는 제게는 지나치게 무거운 말이었어요.

 

그래서, 어떤 말을 들었으면 좋았을까

지금 돌아보면, 저는 단지 존중받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아들이든 딸이든 너무 축하해요.”
“건강하게 자라고 있죠? 정말 다행이에요.”
그저 이런 말 한마디면 충분했을 텐데,
사람들은 왜 꼭 한쪽을 골라야 하고, 비교해야 하는 걸까요?

임신 초기, 특히 아직 불안정한 시기에는 아기를 지키기 위한 감정 자체가 예민하고 날카롭습니다.
사소한 말도 쉽게 상처가 되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를 향한 사회적 기대나 편견이 엄마에게 무겁게 전달되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이제 누군가 임신했다는 말을 들으면 성별은 바로 묻지 않아요.
대신 이렇게 말해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세요? 몸은 괜찮으세요?”
그 말 한마디가, 임신 중인 사람에게는 정말 큰 위로가 될 수 있거든요.

 

사실 누군가의 한마디가 상처가 되기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던진 말이지만, 임신한 제 입장에서는 그 말에 담긴 기대와 선입견, 때로는 무심함까지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아기의 성별은 그 자체로 소중하고 감사한 존재인데,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만들어낸 기준 속에서 무엇은 좋고, 무엇은 아쉽다는 식의 반응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점점 움츠러들었습니다.

 

임신이라는 생애 처음 겪는 변화 속에서, 저는 축하와 응원보다 판단과 조언을 먼저 마주해야 했고, 그게 참 외롭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더더욱 ‘어떤 말을 해주는가’보다 ‘어떤 마음으로 들어주는가’가 훨씬 중요하다는 걸 배우게 되었습니다.

임신은 누구에게나 다르고, 모든 엄마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