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화학적 유산 이후, 낯선 몸과 마음의 변화
화학적 유산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유산’이라는 단어만이 머릿속에 크게 남았습니다.
임신 초기였기 때문에 태아가 자궁에 착상하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배출된다는 설명을 들었지만, 제겐 그 어떤 이론도 위로가 되지 않았어요.
내가 지키지 못해서 세상의 빛을 보지도 못하고 나왔구나 싶어서 스스로를 자책했습니다.
기분이 좋은 생일달이라 축하받았지만 슬픔을 감추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병원에서는 흔한 일이라고 했고, 몸도 금세 회복될 거라 했지만, 정작 제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새로운 생명이 내 안에 자라고 있다는 기대로 가득했는데,
갑작스레 모든 것이 사라졌다는 현실은 너무 허무했고, 내 몸에 대한 신뢰마저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몸은 평소처럼 움직이고 있었지만, 마음은 하루에도 수십 번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했습니다.
신체적으로는 생리주기가 불규칙해졌고, 유산 후 첫 생리를 기다리는 동안 끝없이 심리적으로 너무 불안했습니다.
이전과는 달리 생리량이나 통증에도 미묘한 변화가 느껴졌고, 그럴 때마다 ‘내 몸이 아직 회복되지 않은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어요. 단순한 호르몬 변화일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은 늘 한 발 앞서 불안을 키웠죠.
몸에 귀를 기울일수록 더 많은 의심과 불안이 생겼고, 어느 순간엔 나 자신을 너무 몰아붙이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한 노력
화학적 유산은 생리처럼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과정이라고들 말하지만, 감정의 여진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임신을 확인하지 않고 모르고 넘어갔으면 생리주기가 조금 늦어졌구나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근데 임신을 확인하고 병원에서 검사 후 며칠이 지난 갑자기 출혈이란 저에게는 ‘아이를 잃은 경험’이었기 때문에, 스스로를 위로하고 회복하는 데 시간이 꽤 필요했어요.
주변에서는 “다음엔 잘 될 거야”, “초기라서 다행이야”라고 말했지만, 그 말들이 제게는 오히려 더 큰 부담이 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지냈지만, 밤이 되면 혼자 울기도 했고, SNS에 올라온 임신 소식이나 출산 사진을 보면 괜히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그런 저의 모습이 스스로도 낯설게 느껴졌고, 결국에는 감정을 억누르는 걸 멈추기로 했습니다.
제가 처음 한 일은 제 감정을 솔직하게 마주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슬프다’, ‘억울하다’, ‘무섭다’는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더 감정적인 남편은 애써 감추는 모습이었습니다. 남편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했고, 가까운 친구 한 명에게만 털어놓으면서 조금씩 감정이 정리되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쓰는 것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일기장을 꺼내어 처음부터 끝까지 그날의 일과 감정을 써 내려갔고, 그렇게 글로 쓰다 보니 내가 어떤 부분에서 가장 아파했는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어요.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꺼내놓는 시간이 저를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회복을 위한 생활 습관과 마음의 리듬 찾기
몸의 회복을 위해 저는 일상을 조금씩 재정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단순한 것부터 시작했어요.
정해진 시간에 자고 일어나고, 30분 산책하기, 따뜻한 물 자주 마시기 같은 기본적인 생활습관을 하나씩 정리했죠.
의외로 이런 기본적인 행동들이 ‘내 몸을 다시 돌보고 있다’는 확신을 주었고, 자존감 회복에도 도움이 되었어요.
더불어 카페인 섭취를 줄이고, 인스턴트 음식 대신 집밥을 챙겨 먹으며 몸이 서서히 안정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병원에서는 생리 3주기 정도 지나면 다시 임신을 시도해도 된다고 했지만, 저는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마음의 회복도 동시에 필요했습니다. 저는 듣기 편안한 음악 감상을 들으면서 명상을 시작했어요.
처음엔 5분도 어려웠지만, 하루에 10분씩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다 보니 마음이 많이 가라앉더라고요.
또, 일과 중 한 번쯤은 ‘오늘 나를 위로해줄 문장 하나’를 적는 습관을 만들었는데, 이게 생각보다 큰 힘이 됐어요.
예를 들면 “지금 이 속도도 괜찮아”, “내 몸은 나를 도우려 애쓰고 있다” 같은 짧은 문장인데, 매일 스스로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연습이 몸과 마음을 동시에 회복시키는 데 정말 도움이 됐습니다. 작은 변화들이 쌓이면서 어느새 저는 조금 더 단단해지고 있었습니다.
다시 나를 믿게 된 시간들
회복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건강을 되찾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걸 이번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화학적 유산을 겪은 이후로, 다시 나를 믿는 연습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진짜 회복의 시작이었어요. 내 몸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자연이 선택한 과정이라는 걸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지만, 그 시간을 잘 견뎌낸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 같아요.
더 이상 “왜 나만 이런 일을 겪었을까”라는 생각에 머무르지 않고, “내가 이 경험으로 더 단단해졌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시간을 지나온 제 자신을 인정하는 일이었어요.
누구보다 조심스럽게 다시 임신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 저는 완벽하진 않지만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란 걸 믿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불안한 순간은 있지만, 이젠 그 감정조차 자연스럽다고 여길 수 있어요.
화학적 유산은 분명 아픈 기억이었지만, 동시에 제 인생에서 가장 큰 회복의 시간이었고, 나를 다시 들여다보는 계기였습니다.
지금도 같은 경험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회복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지만, 분명히 나 자신의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 그걸 절대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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